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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장서체의 허실을 말한다

  본 파트는, 이 땅의 모든 인장영업자와 인장가 제현과 함께 나누고 싶은―한문과 한글 인장서체의 현실에 대한 고심어린 진단과 제안이며 또한 인장서체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한 일반 사용자들에게 최소한의 기본 상식이라도 전수되기를 희망하며 마련한 코너이다

  안타깝게도 인장업계는 물론 인장가 사이에서 조차 인장서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용어가 혼용된채 정리가 안되고 있어서 이를 밝히고, 올바른 인장서체 이론의 초석을 놓으며, 특히 한글 인장 서체에 대한 바른 인식과 체계를 정립하여 한글 인장 예술의 개화를 도모하려는데 있다. 우선 위와 같은 혼란은, 수천년동안 한문 인장만을 사용해 오던 이 나라에 해방 이후 갑작스럽게 한글 인장이 등장하면서 야기된 것임을 전제하고 간단히 요점을 기술하고자 한다

  본 파트는 전문적인 내용으로, 한문 인장서체와 한글 인장서체를 나누어 기술한다

  인장서체의 원조는 한문이므로 먼저 한문 인장서체를 분명히 해야 한글 인장서체에 대해서도 말할수가 있겠다

  인장서체의 기본은 필서체이다. 따라서 한문 필서체에 대해 간단히 기술하고 나서 한문 인장서체를 논함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문 필서체를 대별하면 다음 3가지가 있다

  〈 단 현대판 인쇄체 글씨는 인장서체로는 쓸수없는 글씨이기 때문에 고찰 대상에서 제외한다 〉

  ▶전서 - 한문의 원형. 한문은 상형문자로 시작하여 다양하게 형성 변천해 오다가 약 2,200년전 진나라 시황제의 명으로 최초로 통일, 정형, 완성된 글자이다

  전서는 고풍스런 멋과 형상미가 뛰어나고 엄숙한 품격을 갖춘 서체인데, 무엇보다 전서는 회화성 - 쓴다기 보다는 그리는 형태의 글씨로서 도안성이 우수하여 조형을 필수로 하는 인장서체의 원조요 대표격인 글씨가 되었다

  ▶예서 - 전서 다음에 등장한 서체. 전서는 아름다우나 쓰기가 어렵다. 이 점을 보완하여 전서를 좀더 쓰기쉽게 개량한 서체이다. 쓰기쉽게 개량하다 보니 어쩔수 없이 형태가 많이 달라졌으나 어디까지나 기본은 전서이므로 전서에 예속된 글자라는 뜻에서 예서(隸書)라 칭한다. 예서는 자형이 부드럽고 점잖으며 예술적인 멋이 풍부하다

  ▶해서 - 예서보다 더 후대에 출현하였으며 더욱 쓰기 쉽게 진화된 서체이다. 운필에 중점을 둔 서체이므로 예술적인 모습보다는 경쾌하고 수려한 느낌이 강하다. 붓이라는 매체로 표현하기에 가장 쉽고 적합한 형태로 정착되었다

  이 밖에도 전서를 세분하면 대전(大篆), 소전(小篆)이 있고, 또 해서를 물 흐르둣이 쓰다보면 형성되는 행서(行書), 더욱 빨리 쓸수있는 형태로 정착된 초서(草書)가 있으나 한문 필서체를 전문적으로 논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생략하고, 핵심 문제인 인장서체에 대해 기술하기로 한다

  한문의 필서체는 거의 전부가 인장서체로 쓰이고 있으나, 필서체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인장서체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조형 과정을 거쳐 변형되는 인장서체만을 선별하여 밝히기로 한다

1. 인전체―한문 인장서체의 대표

  한문의 원형인 전서를 인장에 맞게 조형시킨 글씨를 인장전서 즉 인전체(印篆體)라 칭한다. 무엇 때문에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전서를 조형시켜야 하나? 예제를 보면서 설명하자. 大韓國人(대한국인)을 전서로 쓰면 다음과 같다

  전서의 독특한 형상미와 엄숙한 품격이 느껴질뿐 아무런 어색함이나 부조화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둥근 형태의 인장에 도입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문외한이 보아도 왠지 어색함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어딘지 미숙한 느낌과 불균형 때문에 전서 고유의 아름다움이 상실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둥근 울타리 안에 글자가 들어 있어서 글자와 울타리 사이에 빈 공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자의 윗부분과 자의 왼쪽 부분 등이 비어 있어 허전한 느낌을 주며 옆에 있는 꽉찬 글자와 조화가 되지 않아 마치 불구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러한 결함을 그냥 두고볼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미의 결핍은 예술가에게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각자는 특수한 조형 방법을 창안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는데 다음을 보자

  어떤가? 아까보다 훨씬 균형이 잡힌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즉 비어 있어 불쾌감을 주는 공간을 자획을 구부려서 채우는 방법을 쓴 것이다

  이와 같이 인장 안에서 자획을 구부려서 글씨를 조화시키는 조형방법을 조무법(組繆法) 이라 하며, 이렇게 완성된 인장전서를 인전체(印篆體)라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인장업계에서는 본 인전체를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그냥 전서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이것이 문제이다. 좀더 확실히 밝혀보자. 위와같이 조무법을 사용하여 글씨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은 인장이란 특수한 예술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며 필서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전서로 의 모양은 이미 수천년동안 공식적인 룰로 정착되어 있는 형태로서 한 개인이 임의로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는 이미 전서가 아니며 인장 안에서만 허용되는 글씨 즉 인전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전체의 원형이 비록 전서라 하더라도 이미 전서가 아닌 인전체를 전서로 호칭하는 것은 오류이며, 과거에는 호칭상의 간편성 때문에 알면서도 사용하는 편법으로 간과하였지만, 지금은 서체의 내막을 잘 모르는 후배진들, 더욱이 어깨너머로 배워가지고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칼을 든 인장영업자들이 전서 전서 하니까 꼬부린 글씨가 곧 전서인줄 알게 되는 심각한 오류가 야기된 것이다.

  더욱 깜짝놀랄 일은 한글마저 꼬부리면 한글전서라 호칭하므로서, 전서란 존재하지도 않는 한글을 모독하고 있는 일이다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꼬부리는 것 즉 조무법은 인장 안에서 글씨를 조형시키는 표현방법 중 하나이지 서체가 아니며 또한 이 조무법은 한문만의 전매특허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필자는 영문도 인장으로 조각한다면 조무법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조무법을 적용시킨 영어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당연히 인장영어 즉 인영체이다. 혹시라도 영문전서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노파심에서 못박아 두는 말이다.

  아무튼 인장 안에서는 전서의 원형보다도 조무법을 사용하여 전체적인 형태와 획의 모양을 가꾸고 공간처리의 묘를 얻은 인전체가 월등히 아름답다. 인전체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으로 필자가 조각한 인장중의 하나를 감상하면서 마치기로 한다

♣  내용 : 尹錫萬印 (윤석만인)
♣  서체 : 표준인전체
♣  올바르지 못한 인전체, 저급한 인전체까지 모두 다 인전체라고 부르는 현실 때문에, 본 명통거리에서는 올바른 정상 수준의 인전체를 표준인전체라고 칭함

2. 근대에 생긴 필요 악―실용인전체

  1950년대까지만 해도 실용인전체란 장르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두가지 요인에 의하여 서서히 실용인전체란 장르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한글인장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경제성장과 함께 진행된 생활의 다변화와 급박함이다.

  무슨 말이가 하면, 예전에는 가장 값싼 목도장(속칭 막도장) 하나를 조각해도 현장에서 급조하는 일은 없었고 맡긴 뒤 며칠후에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만큼 서체의 구현에 충실했고 사람들의 삶이 급박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경제성장과 함께 생활이 다원화되고 급박해지다 보니, 인장도 현장에서 즉시 제작해 주기를 원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으며―지금 현재는 목도장은 5분 이내, 2만원 내외의 실용인장들은 30분 내외에서 1시간 이내로 즉시 제작해 주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우선 다시한번 표준인전체(최상급 바른 인전체)를 보면서 설명해 보자

보는 것처럼 표준인전체는 모든 획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짜임새가 다양하다

이러한 서체는 먼저 종이에 그린 다음 인면에 전사해 놓고 조각해야 하며 곡선 조각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으로서, 결국 준비 포자 조각 완성까지 1시간 이상 2시간, 3시간 그 이상도 걸릴수가 있다. 서체의 선정과 완성도에 따라서 시간과 함께 조각비도 달라지는 것이다

  자 그런데 고객이 찾아와서 금방 써야 하니 빨리 새겨달라고 부탁하고 옆에 앉아 기다리는데, 어찌 위과같은 과정을 다 거치면서 한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할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태동된 것이 바로 실용인전체란 장르이다.

  위의 尹錫萬印실용인전체로 조각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이제 사용자 여러분도 짐작하셨을 것이다. 모든 획이 직선형태로 되어 있고 짜임이 단순하다는 것을.

이러한 서체는 포자 과정 없이 즉시 칼을 대고 쭉쭉 밀어가며 조각할수 있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완성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실용인전체라 하더라도 인장가의 안목과 수준에 따라 균형미와 세련미에 큰 차이가 나며, 조각의 깊이와 끝손질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지만, 어디까지나 실용인전체는 중급 이하의 실용인장에만 적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여기서 사용자 쪽에서나 조각자 쪽에서나 유의할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자들은 인장서체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여, 5만원 내외의 중상급 인장재료를 선택하고서도 금방 쓰게 빨리 새겨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때 진정한 인장가라면 고객에게 서체의 진상을 알려주어야 한다. 표준인전체실용인전체의 현저한 가치 차이를 설명해 주고 나중에 찾으러 오기를 종용하거나, 실용인전체로 조각해 주되 가격을 알맞게 절감해 주거나, 아니면 실용인전체에 어울리는 중하급 인장재료를 권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 주지않고 고급재료에 실용인전체로 단시간 내에 조각해 주고 고액을 받는다면 무지한 사용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진정한 인장가의 예술혼과 장인정신은 재물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3. 예전체―표준인전체의 다른 모습

  예전체(藝篆體)는 이름만 다를뿐 사실은 표준인전체와 같은 서체이다. 표준인전체의 고유한 형상미에 중후하고 정중한 느낌을 부각시키기 위해 획이 굵고 온 공간을 가득 채운 모습으로 조형한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획이 굵다보니 여백이 좁아지므로 여유 공간을 얻기 위해 획의 공유나 생략법을 쓰게되어 자연히 표준인전체와는 약간 달라진 형태를 이루게 된다

  결과적으로 같은 표준인전체이면서도 표준인전체의 섬세한 아름다움과는 또다른 장중하고 충만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어 별개의 인장서체로 분류된 것이다

  본 예전체를 구사하려면 고도의 세련된 조형 솜씨가 필요하다. 표준인전체의 획을 무작정 굵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답답하거나 투박하지 않게 표현하는 형태의 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항간에서는 본 서체와 비슷한 궁중체란 서체가 통용되고 있는데 이 둘은 인전체를 원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추구하는 방향과 느낌은 완전히 다른 서체이다

  궁중체는 모든 글자의 획을 글자끼리 또는 테두리를 통하여 남김없이 연결짓는 것이 골자이다. 이것은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서, 인체의 각 부위가 연결되어 있고, 사람이 사람과 유대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가 소통됨을 뜻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부적같은 느낌을 주는 서체이다

  그런데 사실 본 궁중체는 그 출처가 확실치 않고 또 전통 인장서체에 궁중체란 없다. 따라서 본 서체는 근대에 들어와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등장한 변종으로 볼수 있으며 예전체와는 완전히 다른 서체인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표준인전체나 굵은 인전체나 다같은 인전체란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지금은 앞에 밝힌 것처럼 서체의 다양한 분화가 이루어져, 각개 서체의 특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진 것이다

  새로운 이름을 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이 제멋대로 지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의 특성을 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된 이름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와같은 차원에서 고심끝에 본 서체의 통합적인 이름을 예술적인 인장전서라는 의미로 예전체(藝篆體)라 호칭한 것이니, 강호 제현의 지도편달을 바란다

4. 예인체―우리가 추구해야 할 서체

  아무리 아름다운 서체라도 원형 그대로 인장의 공간 안에 도입하면 부조화가 발생하여 필연적으로 조형이 필요함은 이미 밝혔다. 한문의 예서(隸書)가 비록 점잖고 부드러우며 예술적인 멋이 풍부하고 원형 그대로 인장에 사용해도 무난한 서체라고는 해도, 일단 인장의 공간 안에 도입되면 역시 부조화의 발생을 피할수 없다

  띠라서 예서의 기본 골격을 벗어나지 않는 한계 내에서 획의 굵기와 모양을 조형하여 더욱 아름답고 균형잡힌 인장 예서를 구현하게 되는데 이것을 예인체(隸印體)라고 부른다.

  예인체는 그동안 다음 항목에서 말하는 고인체의 그늘에 가려 충분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앞으로 개척할 여지가 많은 인장 서체이다. 예서의 예술적인 특성과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중후한 느낌과 형태의 묘를 살려 준다면 충분히 고급서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서체이다.

  우선 예서예인체의 견본을 수록하니 그 차이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예인체 역시 예서라 불러서는 안되다. 이미 획의 모양이 예서와 달라졌을뿐 아니라, 무엇보다 예서는 붓이라는 매체로 한번에 쓸수있는 필서체인데 반하여, 예인체는 이미 한번에 쓸수 없는―조형해서 그려야 하는 인장서체이기 때문이다

5.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서체―고인체

  고인체(古印體)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지적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방금 위에서 예서의 기본 골격을 벗어나지 않는 한계 내에서, 획의 굵기와 모양을 조형하여 더욱 아름답고 균형잡힌 인장예서를 구현한 것이 예인체라고 하였다. 사실은 이 예인체가 고인체와 마찬가지이다. 다만 고인체는 일본에서 개발된 서체이고 예인체는 순수한 국산이라는 점이 다르다

  일본에서 개발된 서체를 우리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은, 한문은 중국 글자이므로 남의 나라 글자의 원형을 아무도 제멋대로 바꿀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문을 우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본 예의와 룰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내에서는 고인체를 구현할 때에 예서의 원형을 얼마나 고수하고 있는지 확인한 바는 없지만,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내의 실태가 아니라 한국에서 사용하는 고인체의 실태이다

  즉 예서의 원형이 고수되지 않은 잘못된 고인체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점은, 현재 한국 인장업계에서 가장 많이 남발되고 있는 서체가 바로 이 고인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것일까? 우리의 예술혼이 일본을 쫓아갈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고인체가 어떤 인장서체보다도 아름답고 품격이 높은 서체라면 또다른 각도에서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인체는 결코 그런 서체가 아니다

  고인체의 특성은 예서를 바탕으로 하되 획의 긁기를 아주 가늘거나 우람할 정도로 굵게 혼용하면서 획의 끝을 두리뭉술하게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중후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예인체의 개발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할 영역인데 왜 일본식의 고인체를 이토록 남발하는가?

  또 한가지 지적할 점은, 위에 말한 고인체의 특성은 고도의 수련을 하지않은 인장업자도 구현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서인지 전서와의 혼용인지 모를 글자를 획의 굵기와 형태만 둥글둥글하게 처리하고 그 모두를 고인체라 부르고 있으니 어찌 이것을 지적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뿐인가?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한글마저 무리하게 그런 형태로 그려놓고 한글 고인체라 부르는 일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였던가? 한글은 고인체의 특성과는 전혀 어울릴수 없는 글자라는 점은 덮어 두고라도, 왜 한글에 일본서체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만일 고인체가 무엇인지 알고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비열한 일이 되겠지만, 몰라서 자행되는 폐해라 여기며 자위할 뿐이다. 이토록 이 나라의 인장업계는 용어와 인식의 혼란에 빠져 있다.

  본래 인장서체 구현이란 글자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그에 맞는 고도의 조형미를 찾는 미의 창조 행위이며, 더욱 어려운 점은 원형 인장 안에 3자를 넣을 때와 4자를 넣을 때가 다르고, 4각 직인 안에 10자 내외의 많은 글자를 넣을 때가 또 다른데 어떤 경우 어떤 내용일지라도 완벽하게 조화시킬수 없는 서체라면 완성된 서체로 간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한글은 진정 고인체의 특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서체임을 분명히 하는 바이다.

  아무튼 이제 이 대한민국 땅에서 한글 고인체란 이름은 사라져야 하며 한문 역시 고인체를 되도록 지양하고, 예서의 원형을 고수하면서 승화된 미를 구사하는 예인체를 더욱 사랑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인장가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한글 인장서체이다. 한글은 바로 우리의 글이며,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화 될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글자가 바로 한글이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구조로 되어 있고 가장 완벽한 소리글인 우리 한글!―발음과 글자의 뛰어난 일치성 때문에 철자를 외우지 않아도 쓸수있는 글자. 그래서 창시자인 세종대왕의 숙원대로 문맹자가 거의 없는 나라가 바로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인 것이다

  한글 자랑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인장서체를 논하는 자리이므로 생략하고, 다만 위와 같이 구조와 기능면에서 뛰어난 한글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자의 모양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괴롭지만 일단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문제가 과연 그렇게 해결할수 없는 숙명적인 문제일까? 필서체는 차치하고라도 우선 인장 서체만이라도 한문 인장서체와 어깨를 견줄수 있는, 아니 할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아름다움을 구사할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한문 인장의 역사는 수천년인데 한글 인장의 역사는 60년밖에 안되니 비교가 되지 않을 뿐더러, 더구나 한글 인장은 사용 초기부터―최상의 미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용서체 즉 빨리 조각하는데 도움이 되는 보조적인 서체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지금 당장 견준다는 것은 무리임을 안다

  그러나 필자는 한글에 대한 특별한 사랑으로 누구보다 먼저 아름다운 한글 인장서체 창출에 도전해 왔고 또 한글 인장 사용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기에, 필자와 같은 뜻을 가진 인장가들이 한글 인장서체의 완성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머지 않아 수천년 역사를 가진 한문 인장서체의 미적 수준을 따라갈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럼 이제 한글 인장서체에 대해 말하기 위해 모든 한글의 원형인 훈민정음 원본체부터―현행 사용 위주로 확인해 둔다

  한문의 원형인 전서가 도안성이 우수하여 인장서체 조형법인 조무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한문 인장서체의 대표격이 되었음은 앞 장에서 밝혔다

  그런데 보는 것처럼 한글의 원형인 훈민정음 원본은 도안성이 우수한 정도가 아니라 도안 그 자체이다. 바로 이 때문에 조무법을 통하여 조형미를 창출할수 있는 가능폭이 오히려 한문의 전서보다 더 넓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어보는 것이다

  이제 한글 필서체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쓸수있는 인장궁체와 인장행서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훈민정음 원본체를 조형하여 이루어진 3가지 인본체와, 완성의 고지까지 갈길이 요원한 예서를 조형한 명통예서에 대해서 조명하고, 끝으로 컴퓨터 시대에 한글인장의 진로에 대해서도 간단히 진단해 보기로 한다

1. 표준인본체―한문 인전체에 도전한다

  훈민정음 원본체를 인장에 맞게 조형시킨 서체를 인본체(印本體)라 칭한다

  그런데 한글 인장서체에 대해 말을 하려면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글 인장을 사용한 역사가 얼마 되지않아 용어자체가 형성되지 않은채 한문 용어를 그대로 한글에 적용시켜 오류와 수치를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한글 인장서체를 한문 인장서체 이름인 인전체라고 부르고 있음을 신랄하게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심지어는 그냥 한글전서라고 부르기까지 하니 이런 망발이 어디 있는가? 한국인이 자랑스런 한글을 스스로 한문에 예속시켜서는 안될 일이다

  한문서체도 인전체를 그냥 전서라 부르는 것은 오류임을 앞장에서 지적하였는데, 더욱이 한글 인장서체를 전서라 부르다니 터무니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것은 한문의 전서가 구부린 형태를 많이 취하고 있어서 무심코 구부린 것과 전서를 동일시한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민족의 자존심과 한글의 긍지를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이런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즉 전서의 구부러진 모습과, 조무법으로 조형시킨 인장서체가 닮은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 전서를 흉내낸 것이 이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원리이다. 전서도 인장의 공간 안에서는 결함이 많아 조무법으로 조형시켜 더욱 아름다운 인장글씨로 변신시키지 않는가? 조무법은 한문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라, 한글에도 영문에도 어떤 글자라도 도안성이 있는 글자에는 필연적으로 적용시킬수 있는 인장서체 조형법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마디로 한글에는 전서가 없다. 그러니 더 이상 한글인전체니 한글전서니 하는 망발과 부끄러운 오류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소중한 우리 한글 인장서체인 인본체에 대해 밝혀보기로 하자.

  〈우리나라〉를 훈민정음 원본체로 필서하면 다음과 같다

  훈민정음의 도안형태가 주는 딱딱한 느낌은 있어도 어색하거나 흉한 곳은 없다

  그런데 이것을 둥근 형태의 인장에 도입해 보자

  어떤가?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고 균형이 잡혀있지 않아 안정감이 없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일렬로 필서할 때와 달리 둥근 울타리 안에 글자가 들어 있어서 글자와 울타리 사이에 형성된 빈공간이 조화되지 않아 마치 미완성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흉함을 피할 길이 없다면 본 훈민정음 원본체는 인장서체로는 사용할수 없는 글자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훈민정음 원본체는 완전한 도안형태로 되어 있어, 조무법 즉 글자획의 신축이나 변형을 이용한 조형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다.

  일단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나라}를 조무법을 이용하여 조형시킨 인장서체를 보도록 하자

  미숙하고 어색하던 불균형이 해소되고 조형의 묘미가 추가된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장훈민정음원본체―줄여서 인본체(印本體)인 것이다

  그런데 옆의 견본은 이해하기 쉽도록 실용인본체를 예로 든 것이다. 실용인본체란 아래 2항에서 밝히는 것처럼 현실적인 필요성에 적응하기 위하여 조형 수준을 한단계 낮춘 인본체로, 최상의 미를 추구한 표준인본체와 차등을 둔 이름이다. 앞으로 우리 인장가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최상의 품격과 미를 구현시킨 표준인본체이며, 그 목표점은 수천년 역사를 가진 한문과 견주는데 두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일부 뜻있는 인장가들이 한글 인본체의 미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은 과도기에 있으며, 정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리라 본다

  표준인본체의 수준이 향상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직도 여전히 사용자들이 고급 인장을 새길때 한문을 선호하므로 수준높은 표준인본체를 연마할 기회가 적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싼 도장을 새길때는 한글을 선택하여 자연히 실용인본체를 다룰 기회만 늘어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실용인본체는 수준에 이른 인장가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또 하나는 인장서체란 일부 특정 글자만 표현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글자와 모든 상황을 아우를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작용하여 표준인본체 완성에의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홍길동은 제대로 표현되는데 임꺽정은 잘 안된다든가 또 도장 형태에 따라 자형이 정방형이 될수도 있고 상하로 긴 장체가 될수도 있는데, 어느 형태나 역시 같은 느낌 비슷한 수준으로 구현할수 없으면 완성된 서체로 간주할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튼 이제 지평은 열렸고, 한글의 자존심을 찾으며 표준인본체와 실용인본체의 장르도 확실히 구분되었다. 이제는 그동안 충분히 꽃피우지 못한 표준인본체의 예술적 수준을 높이는데 뜻있는 모든 인장가들이 진력할 일만 남은 셈이다

  끝으로 필자가 조각한 한글 표준인본체를 감상하면서 고차원의 미를 향한 한글 인장서체의 가능성을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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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한 상 규
서체 : 표준인본체

2. 악조건을 헤치고―실용인본체

  왜 한가지 인본체를 놓고 표준인본체실용인본체로 구분해야 하는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구분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가장 값싼 목도장(속칭 막도장) 하나를 새겨도 맡겼다가 며칠 후에 찾아가는 시절이었으니 모든 인장서체가 곧 표준서체였으며 실용서체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한글인장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경제성장과 더불어 삶의 형태가 점점 급박해 지면서 인장도 현장에서 즉시 제작해 주기를 요구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표준인장서체는 거의가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구성이 자유분방하여 반드시 포자(글씨를 인면에 올리는 일) 과정을 거쳐 조각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고객의 즉석 제작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포자과정 없이 즉시 칼을 대고 쭉쭉 밀어가며 빨리 조각할수 있는 실용인전체란 별개의 장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때부터 서서히 한글인장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글은 획이 단순하여 빨리 조각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다보니 한글인장은 사용 초기부터 빨리 조각하는데 도움이 되는 보조적인 역할로 출발하여, 지금까지 50여년 역사를 거치면서 예술적 향기를 꽃피우지 못하고 이제 겨우 실용인본체가 기틀을 갖춘 수준에 머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까지 이름마저 부여받지 못하고 한문서체 이름으로 대신하고 있는 현실이 통탄스러워 필자가 고심끝에 처음으로 인본체(印本體)란 이름을 부여하고 훈민정음 원본체를 인장에 맞게 조형시킨 서체임을 확실히 하면서, 이것을 현대의 장르에 맞추어 표준인본체실용인본체로 구분한 것이다

  다음은 표준인본체와 실용인본체의 예시이다

  보는 것처럼 실용인본체는 빨리 조각할수 있도록 자획이 직선 형태가 많아 미의 표현에 제한을 받기는 하나,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살린 멋과 균형미는 상존하고 있다

  아무튼 도장이란 조각의 깊이나 획의 굵기, 그리고 특히 글자의 조형 형태에 따라 미적 수준에 큰 차이가 나타나므로, 조각자의 심미안과 장인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부언해 둔다

3. 명통진취본―최초의 시도

  한글 인장서체의 대표격은 말할것도 없이 위에 밝힌 표준인본체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 같은 인본체라도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서체를 원하는 사용자들이 있게 된다.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자연히 획의 형태를 굵게 조형하는 것이 필연적이 된다

  그런데 이미 밝힌바와 같이 현재 한글 인장서체는 실용인본체만 틀을 갖춘 실정이고 표준인본체는 아직 갈길이 멀다. 이와같은 단계에서 표준인본체를 변형시켜 또 다른 고품격의 서체를 창출한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며, 또 실제 아무도 들어나게 시도한 사례가 없었다

  한문은 이미 위 한문서체 파트에서 밝힌대로, 표준인전체를 굵고 무게감 있게 조형하여 예전체(藝篆體―이 범주 안에서 작가마다 자기 개성을 살린 이름을 붙일수 있다)란 이름으로 시도된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한글은―다른 서체, 이를테면 예서를 무게감 있게 조형하여 예고체니, 고인체니 하는 이름으로 선보인 일은 많으나, 표준인본체에 도전하여 초석이라도 놓은 것은―본인이 처음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다

이제 본인이 특별한 한글 사랑과 의지로 표준인본체 고유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무게있고 정중한 인장서체의 틀을 완성하고―필자의 호를 따서 명통진취본(明通進就本)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의 완성은 진정한 의미의 완성은 아니다. 오래 시도되고 체험된 한문의 예전체와 어깨를 견주려면 앞으로도 멀고 험난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함은 말할것도 없으며 단지 지금 현재―올라갈수 있는 초석과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둘 뿐이다

  무릇 모든 발전이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루어 놓은 수준에서 한단계 더 올라가게 되고 그 수준을 바탕으로 또 한단계 올라갈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한글 표준인본체명통진취본은 그동안 필자의 개척의지와 노력으로 도약의 발판이 될수있는 초석을 놓았으니, 강호에 계신 인장가 제현들께서 더 높은 한글 인장서체의 미를 창조해 주시기를 바란다

4. 땀흘린 탐구 끝에―명통예서

  한글 인장서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항상 한문과 비교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단순히 한문을 뒤쫓기 위한 비교가 아니라, 한문과 구별되는 한글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굴할수 있다는 믿음이다

  본 한글 명통예서(明通藝書)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서(隸書)의 한문표기에 대해서 분명히 하지 않으면 강호에 계신 서예가들로부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으리라 본다

  한문 예서를 표기할 때는 隸書라고 쓴다. 그러나 한글 예서를 표기할때 필자는 藝書라 쓴다. 혹시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서예가나 언어학자가 계시다면 부디 아래 열거하는 당위성을 참작해 주시면 고맙겠다

   한문 예서는 한문의 원형인 전서의 쓰기 어려운 점을 보완하여 출현한 서체로서 자연히 전서와는 많은 부분에서 형태가 달라졌다. 그러나 별개의 글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전서에서 파생된, 즉 전서에 예속된 글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隸書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글 예서를 시도하는 이유는 쓰기쉬운 서체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완전한 도안형태로 되어 있어 미가 부족한 훈민정음 원본체를 좀더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이며, 따라서 형태상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훈민정음 원본체에 예속된 글자라는 점을 부각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隸자를 써야할 이유가 없고 藝자를 씀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 한가지, 이와같이 한문예서와 전혀 입장이 다른 한글예서를 隸書라고 표기한다면 마치 한글예서가 한문에 종속된 글자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이것은 전혀 가당치 않은 애기이며, 어쩌면 사대주의적인 정신의 잔재라 할수도 있다. 옛날 세종대왕께서 訓民正音 즉 백성을 훈육하는 바른 소리글이라는 이름 그대로 모든 국민이 쉽게 글을 깨쳐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려는 의도로 한글을 창제하려고 할때―여전히 한문 사용만을 주장하면서 한글 창제를 반대하던 사대주의 신봉자들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미욱하고 한심한가. 지금 한글은 얼마나 빛나고 있으며 한문은 이 컴퓨터 시대에 얼마나 불편한 글자가 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사전을 열고 隸書를 찾아보면 한문서법의 하나라고 나와 있다. 시대의 진화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용어는 계속 탄생될 것이다. 한글 藝書도 새로이 탄생되는 이름중 하나일 것이며, 이제 사전에《隸書―한문서법의 하나》《藝書―한글서법의 하나》라고 등록되어서 안될 이유가 있는가 묻고 싶다.

  예서의 한문 표기 문제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는데, 아무튼 한글예서는 그동안 많은 서예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좀더 아름다운 예서 창출을 시도하였으나, 아직까지는 예서의 원형이라 할수있는 형태가 정립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리라 예상된다

  더욱이 인장에 사용해도 무리가 없고 적합한 예서는 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그래서 한글 인장예서는 그러한 필서체 예서가 등장하기를 기다릴 여가가 없어 우리 인장가들의 힘으로 인장예서부터 창출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앞서 밝힌바와 같이 인장서체는 어떤 이름 어떤 형태의 도장에서도 한결같은 품격과 아름다움으로 조형할수 없으면 온전한 인장서체로 간주될수 없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한글 인장예서를 창출하기는 매우 지난한 일이나 - 역시 한글의 자존심을 위하여 필자가 시급한대로 한글 인장예서를 일차 시도하고 명통예서(明通藝書)라 명명하게 되었다.

  이 역시 누가 밟고 올라갈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는 차원에서 의미를 찾고 있으며, 한 개인의 명예보다는 한글 인장예술 자체의 수준을 높이는 일에 일조했다는 점에서 만족을 찾을 뿐이다

  다음은 본 명통거리에서 명통예서로 조형한 몇가지 인장들이다

5. 기타―컴퓨터 시대를 생각한다

  지금은 컴퓨터 시대이다.

  요즘 컴퓨터 세대들의 글자 문화에 대한 의식구조를 살펴보면, 우선 고학력자가 자기 이름 석자를 한문으로 쓰면서 더듬을 정도로 한문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과 인장의 글자에 담겨있는 감미로운 예술적 측면을 너무 모른다는 점을 들수 있겠다.

  이러한 편향성에 직면하여 기존의 인장가와 컴퓨터 세대가 함께 인식해야 할 몇가지 문제를 조명해 보았다

   컴퓨터 세대들은 너무나 컴퓨터 서체에 익숙하여 인장마저도 컴퓨터 서체로 표현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컴퓨터 서체는 인장에 도입하고 싶어도 할수 없다는 점을 앞에서 이미 밝혔다. 인장이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회화적 요소 때문에 - 조형할수 없는 컴퓨터 서체는 인장에 쓰지 못하는 내막을 컴퓨터 세대들도 알고 있어야 한다

   현재 중저가의 인장은 한글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으나 고급인장으로 올라갈수록 여전히 한문이 선호되고, 기묘하게도 이러한 경향은 한문에 취약하고 무관심한 신세대들에게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기존의 인장가들이 고품격의 한글 인장서체를 개발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고 본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아름답게 조각된 한글인장을 사용자에게 보여주면〈한글도 이렇게 예쁘게 나오네〉하고 놀라는 것을 보면서〈한글은 모양과 품격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얼마나 뿌리깊이 잠재되어 있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장가들이 고품격의 한글 인장서체를 개발한다면 이러한 인식과 흐름을 바꿀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것은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인장은 심오한 예술이지만, 그렇다고 놓고 감상만 하는 예술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실용성을 겸비한 예술이다. 때에 따라 가난한 사람이 값싼 도장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컴퓨터 세대들의 감성에 맞는 인장서체를 발굴하기 위해서도 컴퓨터 서체에 초점을 맞춘 서체 개발에도 시야를 돌려야 할 때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필자 역시 서체 발굴에 마음을 두고 컴퓨터 서체와 본인의 수정작업을 합성하여 아래 예시하는 새로운 인장서체를 시도해 보았다

  본 서체는 필자의 창작물이 아니라 컴퓨터 서체를 섭렵하면서 합성한 서체이기 때문에 아직 마땅한 이름도 짓지 않은 형편이다

  당연히 본 서체는 아직 완성된 인장서체가 아니며 컴퓨터 서체의 인장 사용 가능성을 열어본 시험적인 서체이다

  언젠가는 인장 안에서 자유롭게 조형할수 있는 컴퓨터 서체가 출현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우리 인장가 쪽에서 그러한 서체를 발굴하는 것이 차라리 빠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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