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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명인장 감상코너

  전통문화, 전통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 국민들의 정서와 뿌리깊은 관련이 있다

  유구한 세월속에 형성되었다는 역사적인 관점만이 아니라―처음부터 그들의 정서에 맞는 문화와 예술을 잉태시키고 그들의 정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 왔다는―체질적인 측면에서 전통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향과 같은 것이다

  현대는 TV와 컴퓨터로 인하여 지구촌 전체가 거리감을 느낄수 없을 만큼 가까와 졌고, 그러한 물결을 타고 요즘 젊은 세대는 서양문화, 서양풍물을 너무 무분별하게 흡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노랑머리, 꽉끼는 청바지, 여성들의 신체 노출 패션, 대중음악과 춤 등 점점 더 폭넓게 서양문화를 흡수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의 선악을 논하려고 하는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혹시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이 선진국, 강대국의 문화라고 해서 모두 다 우월하게 생각하는 사대주의적인 잠재의식 때문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무리 서양문화를 멀리서 보며 선호하는 사람이라도 막상 동족을 떠나 홀로 서양인들과 함께 섞여 살아보면 결국 동화될수 없는 그 무엇,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정서의 차이이며 문화의 차이이다. 이것은 우열의 문제가 이니라 단지 차이의 문제일 뿐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유전학적으로도 다르고 이에 따른 사고방식도 다를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아무리 내가 서양인의 옷을 입고 서양인의 음식을 먹어도 결코 서양인이 될수는 없음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간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이러한 맥락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전통문화 계승과 보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인장문화〉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까지 깊이 침투되어 있는 전통 예술중의 하나이다

  전통문화를 접촉할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인장 예술에 접근해 보고 눈에 익히고 이해하는 기회를 주는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사료되어 본〈명인장 감상 코너〉를 마련하였다

  조선시대의 옥새를 비롯하여 유명 인장인의 인장, 그리고 현대의 인장에 이르기까지 수록하되, 지나치게 많은 인장을 예시하면 오히려 감상의 신선미가 둔화되므로 대표적인 인영만을 엄선하여 보여주고―감상포인트를 두어 이해를 돕는데 중점을 두었다. 본 코너를 통하여 인장예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고유한 정서를 가다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본 코너는 〈조선시대의 인장〉〈근대의 인장〉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참고문헌 :〈인각교본〉김기동 편저, 1975년판, 신서출판사
〈인장보감〉김병영 편저, 1993년판, 신양출판사
〈전각〉김태정 글 사진, 1990년판, (주) 대원사 외

1. 세종대왕의 어보(옥새)

  어보(御寶) : 임금의 도장. 옥새(玉璽)와 동의어. 국어사전에 옥새 역시 임금의 도장으로 풀이 되어 있다

  그러나 어원을 살펴보면 옥새는 옥으로 만든 황제의 도장에서 비롯된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입김 때문에 황제가 될수 없었으므로 새(璽)란 말을 쓰지 못하고 보(寶)라고 칭하였으며, 고종황제에 이르러 처음으로 새(璽)라고 호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재료에서 비롯된 옥새나 금보라는 용어보다는, 의미로 구분되는 어보(御寶)와 국새(國璽)라는 말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옥새는 이미 언어의 진화를 통하여 정착된 말이므로 왕정시대의 모든 임금의 도장을 통털어 옥새라 칭해도 무방하다






세종대왕의 어보
재위기간 : 1419∼1450 년
인면의 크기 : 10.1×10.1 ㎝
내용 :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지보(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之寶)
서체 : 구첩전(九疊篆)―구첩법으로 조형한 인전체(印篆體)

  〈감상포인트〉

  옥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임금의 권위와 위엄을 들어내는 일이었다. 우선 본 옥새의 테두리가 매우 두꺼운 것은 바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였으며 더불어 울타리―즉 튼튼한 국력을 상징하고 기원한 것이다

  글씨체는 구첩전(九疊篆)―즉 한문의 전서를 아홉번(많이) 구부려 빽빽하게 조형한 인전체(印篆體)인데, 세밀히 살펴보면 몇가지 놀라운 특징과 의도를 찾아볼수 있다

  첫째―모든 획의 굵기가 일정하다는 것, 둘째―획과 획 사이의 여백도 가로 세로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일정하다는 것, 셋째―본 어보는 12자의 글씨를 세로쓰기로 4자씩 3줄로 구성하였는데 1줄(4자)의 가로획수를 세어보면 30획씩 3줄이 똑같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의식적인 조형으로 제작자가 의도하는 것은, 지극히 통제되고 완벽한 질서정연함과―숨쉴 여유조차 없이 꽉찬 여백에서 발산되는 중압감을 통해 임금의 권위와 엄숙함을 들어내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본 어보의 인면의 크기는 사방 10.1㎝로서, 인장으로는 엄청난 크기이며 이것을 날인하였을 때 들어나는 임금의 권위는 막강하다고 하겠다

  또한 글씨 한자 한자를 분석해 보면 미로찾기와 같은 복잡한 조형 속에서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균형이 잡힌 형태의 아름다움과 묘를 발견하고 감탄하게 되는데, 이것은 유구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가다듬어진 결과이다

  또 한가지 옥새 감상에서 빠뜨릴수 없는 점은―옥새의 제작을 위임받은 전각자의 심리적 측면이다. 임금의 도장을 조각함에 있어 얼마나 황송한 마음으로 목욕재계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였겠는가? 글씨 한자 한자 속에 깃들어 있을 조각자의 심혼을 느낄때 인장의 완성도에 대해 다시한번 음미하게 된다

2. 고종황제 때의 국새





고종황제때 외교문서에 사용하던 국새(國璽)
재위기간 : 1864∼1906 년
인면의 크기 : 9.7×9.7 ㎝
내용 : 대한국새―大韓國璽
서체 : 구첩전(九疊篆)―구첩법으로 조형한 인전체(印篆體)

  〈감상포인트〉

  본 국새는 조선시대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만이 칭할수 있는 새(璽)자를 사용한 국새로서, 고종황제가 최초로 황제에 등극함과 함께〈대한제국은 독립된 국가이다〉라고 중국에 대하여 소리없이 선언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테두리를 두껍게 함으로서 황제의 권위와 튼튼한 국력을 상징하고 기원한 점, 사용한 서체, 그리고 양쪽 줄 모두 가로획수를 18획으로 통일시킴으로서 완벽한 질서와 통제를 이룬 구성, 더 이상 점 하나 들어갈수 없도록 꽉찬 여백에서 발산되는 중압감을 통해 황제의 위엄과 엄숙함을 들어낸 점들은―앞서 감상한〈세종대왕의 어보〉와 같다

  그런데 미묘한 변화가 한가지 발생하였다. 세종대왕의 어보에서는 획의 모서리가 직각을 이루어 더욱 엄격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본 국새는 획의 모서리가 약간 둥글게 처리되어 엄숙한 가운데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군주의 권위와 위엄을 들어내는데 모든 것을 집중하던 시각에서 미세하나마 심미안적인 측면에도 비중을 두기 시작하였다는 증거로 볼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 4항의 대한민국 첫번째 국새에서 더욱 확연히 들어날 것이다

3. 명성황후의 고황후보





고종황제의 황비였던 명성황후의 황후보
제작년도 ; 1895년 8월 이후
인면의 크기 : 옥새와 대등
내용 : 고황후보―高皇后寶
서체 : 전서(篆書)

  〈감상포인트〉

  과거의 옥새나 왕후보는 반드시 실무에 사용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기원적인 목적으로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옥새나 보인(寶印)이 필요 이상으로 천개가 넘는 이유를 생각해 볼때―그리고 여기 선 보이는〈고황후보- 高皇后寶〉는 명성황후가 살아 있을때 제작된 것이 아니라, 1895년 8월 일본인의 만행에 의하여 무참히 시해된 이후에 제작된 것이기에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역대 왕후보를 살펴보면 보인의 크기나 서체에 있어서 흔히 임금의 옥새와 대등하게 제작된 것을 확인할수 있는데, 간혹 여기 선 보이는 고황후보와 같이 서체에 있어서 전서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인전체를 사용하여―구첩전을 사용한 옥새처럼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향기를 부여한 왕후보를 접할수 있다

  그러나 임금의 옥새는 한결같이 구첩전을 사용하여 최상의 권위와 위엄을 부여한 것을 보면 한 걸음의 차이를 두었음을 알수 있다

  본 고황후보는 전서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되 예서(隸書) 처럼 부드럽고 향취 있는 모습으로 전각되었는데 매우 순백한 느낌과 함께―더러운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처참히 살해 당하는 명성황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참고로 덧붙이는 것은―본 인영은〈인각교본〉에서 발췌한 것인데, 필자가 추측컨데 그 이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인용을 위한 복사 과정을 많이 거치면서 약간 변모되어, 원래의 풍부한 향취가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

4. 대한민국 첫번째 국새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제작한 국새
제작년도 ; 1949 년
인면의 크기 : 6 ㎝×6 ㎝
내용 :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
서체 : 인전체(印篆體) - 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인장전서

  〈감상포인트〉

  본 국새를 보면 세월의 변천을 실감한다. 앞서 감상한 세종대왕의 어보와 고종황제때 제작된 국새와 비교해 보라

  군주의 권위와 위엄을 들어내 주던 엄격한 서체였던 구첩전은 완전히 사라지고―직선이었던 획은 완만한 곡선으로, 획수를 정확히 일치시키던 엄격함에서 필요한 부분만 조화롭게 획을 변형하는 자유로움으로, 여백을 꽉 채우는데서 오는 중압감보다 여백을 살림으로서 얻게 되는 신선함을 소중하게 부각시켰다

  이조 500여년간 거의 변함없던 옥새의 모습이 고종황제 이후 불과 50여년 사이에 이토록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무엇보다도 군주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점, 일제치하의 억압과 해방, 서양문화의 유입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이제는 국새라 할지라도 권위와 위엄만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심미안적인 아름다움을 함유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바뀐 증거라 하겠다

  아무튼 본 국새는―완만한 곡선과 함께 구사된 형태의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적절히 처리된 여백에서 풍기는 신선미가 일품인 수작이며, 아울러 현대인장의 예술적 특성을 완벽하게 보여준 인장이라 하겠다

  또 한가지 특기할 점은, 본 국새의 규격이 옥새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사방 6㎝ 크기로 매우 작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해방 직후 새정부 수립 초창기에 완벽한 조건의 국새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여러 여건 때문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5. 대한민국 현재의 국새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세번째로 제작한 국새
제작년도 ; 1999 년
인면의 크기 : 10.1×10.1 ㎝
내용 : 대한민국
서체 : 훈민정음 원본체
전각인 : 여원구(呂元九)―1932∼

  〈감상포인트〉

  앞서 감상한 대한민국 첫번째 국새는 제작 당시의 여건으로 인하여 유례없이 작은 규격, 사방 6㎝로 제작되었음을 밝혔는데, 본 국새에 이르러 세종대왕의 어보와 동일한 10.1×10.1㎝ 규격의 금보(金寶)로 완벽하게 제작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되었음을 실감케 되는 부분이다

  본 국새의 엄청나게 두꺼운 테두리를 보라. 이 엄천난 테두리만 보고 있어도 대한민국은 영원하며 어떤 외세도 꺽을수 없는 튼튼한 국방력을 상징하는듯 마음마저 안도되는 것 같다.

  본 국새에 사용된 서체는 천(天) 지(地) 인(人)에 기초를 둔 훈민정음의 원본체를 충실하게 재현한 서체이며, 대한민국 국새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킬수 있는 서체를 찾아 두번째로 시도한 한글 국새이다

  진정 이 나라 관인(官印)의 최정상에 위치한 국새에 남의 나라 글씨인 한문을 사용할 이유가 없으며, 자랑스런 한글을 사용한 점에 뜨거운 공감과 갈채를 보낸다

  다만 한글 인장서체는 아직 과도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한글 인장서체 이론, 한글 인장서체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까지 모두가 다 이제 출발선상에 있어서, 과거 수천년간 답습해 온 한문 인장처럼 정상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과도기에 있다

  본 국새 역시 이러한 큰 흐름에서는 한순간에 벗어나 완벽한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었으며, 한글을 사용함으로 대한민국 국새의 자존심은 지켰으나―한가지 상존하는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인장 안에서 필서체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항상 완전한 조화를 얻을수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숙제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인장은 예술이며 예술은 아름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측면이 먼저이며, 논리와 의미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 완전하게 보완해 주는 보조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아무리 국새의 의미가 살아 있어도 균형과 조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과연 자랑스러운 국새가 될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과도기에 있는 한글 인장서체가 안고 있는 큰 숙제이다

6. 추사 김정희의 낙관 A




전각자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생존시기 ; 1786 ∼1856 년
내용 : 추사―秋史 (본인의 호)
인전체(印篆體)―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인장전서

  〈감상포인트〉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희대의 명필가였으며, 그의 독특한 서법은 추사체라 이를만큼 일가를 이루었다

  한석봉에 이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조시대의 서예가로서 그의 또하나의 특징은 어느 한 서법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서법을 구사하였다는데 있다. 같은 예서라도 어떤 글씨는 고풍스럽고 부드러운가 하면, 어떤 글씨는 지금 이 시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는 날렵한 서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추사는 서예의 대가였을뿐 아니라 전각(인장조각)에도 능했다. 인장은 제한된 공간 안에 글씨를 조형하는 예술로서, 필서체를 그대로 옮기는 방법만으로는 역부족이고 더불어 조각이라는 별개의 기예로서 완성시키는 예술이기 때문에, 추사의 전각 수준이 서예와 대등한지는 모르겠으나 서예에서 보여주는 그의 절묘한 예술혼이 인장에서도 여실히 들어나고 있다

  본 낙관의 글씨를 보라. 얼마나 자연스러우며 부드럽고 인정감이 넘치는가? 상단부는 테두리 가까이 글자의 라인을 맞추고, 하단부는 넉넉한 공간을 조화있게 남겨 둠으로서 안정감과 함께 신선한 변화의 묘를 얻었다

  서체는 전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썼으나 秋자의 상단부 3개의 획끝을 서로 연결시키고, 史자의 상단부의 일부 획을 끊어 놓음으로서 더욱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형태의 미를 부여하였다

  이와같이 전서의 원형을 변형시키는 것은 인장 안에서만 허용되는 조형법으로서 조무법(組繆法)이라 일컫고, 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시킨 한문 인장서체를 인전체(印篆體)라고 칭한다

7. 추사 김정희의 낙관 B



생존시기 ; 1786∼1856 년
내용 : 금문지가 - 今文之家
서체 : 예서(隸書)

  〈감상포인트〉

  추사의 독특한 서법이 유감없이 들어난 작품이다. 특히 본 작품은 사각 테두리가 있기는 해도 세로 1줄 쓰기를 채택함으로서 필서체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재현할수가 있어서 그의 명필대가로서의 진면목이 그대로 들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어느 한 폭의 명화가 이런 아름다움을 줄수 있으랴. 글씨는 이상하게도 살아 움직이는 생동력이 있다. 더욱이 인장서체는 회화적인 요소가 풍부하여 똑같은 글자라도 표현하기에 따라 천태만상의 느낌을 주며 조화의 깊이는 헤아릴 길이 없다

  본 작품을 보노라면 마치 천하 명당자리에 터를 잡은 평화로운 초가 마을을 보는듯한 착각이 든다

8. 향수 정학교의 낙관




전각자 : 향수 정학교(香壽 丁學敎)
생존시기 ; 1832∼1914 년
내용 : 원종채중랑근사등완백(遠宗蔡中郞近師鄧完白)
서체 : 전서(篆書)

  〈감상포인트〉

  향수 정학교는 서예와 그림에 능했으며 특히 인각에 뛰어났다

  위에 예시한 작품을 보라. 누가 이것을 글씨라 하겠는가. 이 작품이야말로 말 그대로 완전한 한폭의 그림이다. 어떤 한폭의 산수화나 추상화가 이런 아름다움을 줄수 있으랴. 질서없이 제멋대로 나열된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 구도와, 글씨 한자 한자 역시 비뚤어 진듯 기울어 진듯 하면서 균형이 잡혀있는 형상미는 가히 인장예술의 극치라 하겠다

  본 작품의 서체는, 마지막 白자 한 자만 조무법을 활용한 인전체를 쓰고 나머지는 모두 전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문은 원래가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형상미가 뛰어난 장점으로 작용하는데 - 소리글인 우리 한글은 어떻게 인장 안에서 조형하여 한문보다 더 아름다운 인장서체를 특징지을수 있을까―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꿈꾸어 보며, 위와같은 한문 명인장을 볼때 더욱 그러한 생각이 절실하다

1. 위창 오세창의 낙관




전각인 :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생존시기 ; 1864∼1953 년
내용 : 오세창인―吳世昌印
서체 : 인전체(印篆體)―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인장전서

  〈감상포인트〉

  오세창은 1864년에 출생하였으나, 해방후 8년 즉 1953년까지 생존한 인물이므로 근대에 속한 서화가이고, 특히 인각에 출중하였던 명인장가이다

  그는〈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과〈근역인수―槿域印藪〉라는 저서까지 남겨 더욱 유명하며 후진을 위한 공이 큰 인물이다

  자신의 이름을 조각한 본 작품을 보면 누구나 첫눈에 짚이는 것이 매우 독특하다는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고풍스런 향취보다는 현대적인 도안형태를 닮은 어떤 독특한 디자인을 보는듯도 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비범한 아름다움이 스며있음을 느끼게 된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구사한듯 하면서도 완벽하게 조화된 균형미, 넉넉한 여백, 날카로운 도안형태를 닮은 모습 속에서도 쉬지않고 묻어나오는 부드러움을 느낄수 있다

  그리고 오세창의 인장서체에서 공통적으로 느낄수 있는 또하나의 특징은―글자의 획이 마치 지금 막 꽃잎이 피어나는 듯한 생성감을 주는 점이다. 본 작품은 백문 즉 음각의 경우인데, 주문(양각)의 인장에서도 역시 한지에 쓴 먹물이 서서히 번지는 것처럼 글자의 획이 지금 막 생성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오세창의 인장서체는 상형문자인 한문보다, 소리글인 한글의 조형에 더욱 적합한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본 인장의 필순을 보면 〈吳世昌印〉의 吳자는 오른쪽 위에서 시작하여, 世자는 왼쪽으로, 昌자는 아래로, 印자는 다시 오른쪽으로 빙빙 돌린 것을 알수 있다. 이것을 회문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중간에 지그재그 형태로 꺽으면 좋지 않다는 관념에서 채택한 필순이었다

2. 성재 김태석의 낙관




전각인 : 성재 김태석(惺齋 金台錫)
생존시기 ; 1875∼1952 년
내용 : 태석―台錫(본인의 이름)
서체 : 인전체(印篆體)―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인장전서

  〈감상포인트〉

  성재 김태석 역시 앞에 소개한 오세창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타계한 시기는 오세창보다 1년 빠르나 출생시기가 11년이나 늦기 때문에 오세창보다 좀더 근대의 서예가요 인장가라 할수 있다

  김태석의 인각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는―인장의 본 고장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중국에서조차 인정을 받아 중국 총통의 옥새까지 조각하였으며, 그 밖에도 많은 중국 관청의 관인을 조각한 사실로도 알수 있고,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의 관인도 많이 조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장의 귀재이다

  자신의 호를 조각한 본 낙관을 보면 간과해서는 안될 특별한 기예가 있다. 백문 즉 음각 인장은 양각과 달리 똑같은 굵기로 조각을 해도 훨씬 더 굵게 보이는 속성이 있고, 똑같은 형태로 조각을 해도 양각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면 자칫 답답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미숙한 느낌의 인장이 되기 쉽다. 실제로 이런 점에서 정상급 인장가의 작품에서도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음각 인장을 접할수 있다

  그러나 본 인장을 보면 김태석은 음각 인장의 특성을 완벽하게 터득한 달인임을 알수 있다. 오히려 양각 인장보다도 더 완벽하게 의도한 느낌을 구현하였다. 마치 솜처럼 부드러운 밧줄을 구부려 엮은듯한 서체는 더할수 없이 중후하고 자연스러우며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음각 인장이 주는 답답함이 추호도 없으니 얼마나 고도로 세련된 솜씨인가. 참으로 다같은 글자를 가지고 인장가마다 이처럼 다양한 미를 창출하는 것을 볼때 한없이 오묘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인장서체의 조형이란 1㎜ 만 상하좌우로 치우쳐도 균형이 깨지는 민감한 예술인데 본 인장은 어느 한 곳 미비한 데가 없다. 참으로 명인장이라 하겠다

3. 60년대 화랑의 소장인


내용 : 아트리에 64
서체 : 훈민정음 원본체

  〈감상포인트〉

  본 인장은 아마도 화랑(畵廊)에서 취급하고 있는 예술품의 소장 확인용이나 거래상의 업소 서명용으로 쓰이던 인장이었을 것이다

  예술품을 취급하는 업소의 인장이므로 격에 맞는 품위를 갖추어야 했을 것이며, 아울러 현대의 회화―서양화도 취급한다고 볼때 한문보다는 한글이 시대적인 감각에 어울렸을 것이다

  누가 한글을 모양없는 글자라고 했는가? 본 작품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시도하는 한글 인장인데다가 한글 인장이 사용된지 반 갑자도 안되는 시기의 작품이고 거기다 아라비아 숫자까지 동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멋진 조형미를 창출해 낸 수작이다

  서체는 훈민정음원본체를 근본적인 형태의 변형없이 그대로 조형하였으면서도, 한문에서는 보기 힘든 현대 감각이 풍부하고 예술적 향기도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다만 테두리 처리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으나―아무튼 이러한 좋은 작품을 볼때 한글 인장서체의 미래는 밝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한가지 남아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아름답게 표현하기가 힘든 한글을―특히 받침이 있는 글자와, ㅅ(시옷)이나, ㅁ(미음), 또는 ㅇ(이응) 같은 자음이 합성된 글자들을 어떻게 조화있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점들이 우리 인장가의 어깨에 지워진 어려운 과업이라 하겠다

4. 현대의 업체 직인



내용 : 대한방수공업사지인
내용 : 大韓防水工業社之印
서체 : 인전체(印篆體)―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인장전서

  〈감상포인트〉

  과거 주류를 이루었던 낙관과 현대의 사용인장을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과거에는 넉넉한 시간을 두고 제작하면서―글씨 한자 한자의 완성도보다 전체적인 조화에 비중을 두었고, 또 작품마다 독특한 향취를 구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인장은 용도의 실용화, 각박한 시간, 작품의 보수 문제 여러가지 요소가 맞물려―매 작품마다 고심해야 되는 전체적인 조화보다는 한자 한자의 완성을 통한 정형된 미를 추구하게 되었고, 획의 질감도 자유롭고 불규칙한 형태에서 빨리 조각할수 있는 매끄러운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유념할 점은,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예술이라는 측면을 떠날수 없는 것이 인장의 기묘한 속성이며 특성이다. 그리하여 현대의 인장가들은 현대의 조건에 맞는 예술성을 구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여기 선 보이는 것과 같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글자 한자 한자의 완성도를 추구하다 보니 예전과 같이 전서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조무법을 충분히 활용하여 조형의 묘를 통한 형태의 아름다움에 비중을 두게 되었다

  여기 선 보이는 작품은 현대 사용인장의 최상급 서체의 전형이라 할수 있는데―과거의 인장에서 볼수 없었던 색다른 아름다움이 풍부한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글씨 한자 한자를 유심히 감상해 보라. 이찌 다같은 글자를 가지고 이렇듯 다양하고 절묘한 형태의 아름다움과 조형의 묘를 창출할수 있을까…? 참으로 인장예술의 백미를 보는 느낌이다

  과거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예술성을 구현해야 하는 현대 인장의 측면에서 볼때 참으로 명작이라 힐수있는 좋은 작품이다

5. 현대의 학회 직인


내용 :
서체 :
한국변론학회
인본체(印本體)
훈민정음 원본체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한글 인장서체

  〈감상포인트〉

  본 작품은 참으로 갈채를 보내고 싶은 한글 인장의 명작이다. 이 작품을 보기전까지 누가 한글을 이처럼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표현할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것은 이미 글씨가 아니라 한폭의 구성화이다

  누가 이 작품을 인각하였는지 현재로선 알수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나―만일 같은 사람의 작품을 원형 인장을 포함하여 단 두 세개 만이라도 더 감상해 보았을때, 모두 본 작품의 수준과 일치한다면 그 인장인은 가히 예술적인 감각과 조형의 귀재라 하겠다

  구태여 결함을 찾자면 론자의 ㄴ(니은) 받침이 약간 빈약해 보이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한글 인장의 짧은 역사에 비추어 볼때 옥의 티에 불과하며―본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문 인장의 수준에 뒤질 이유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분명히 한글 인장서체는 앞으로 한문 인장서체보다 더욱 아름답고 심오한 수준에 이를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말은, 흔히 이러한 한글 인장서체를 한글전서라고 부름으로서 전서란 존재하지도 않는 한글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인장인들이 있는데―이는 한문 일색의 전통에서 갑자기 등장한 한글 인장서체에 대한 명칭과 이론이 전무한 상황이라 무심코 저지르는 오류라 생각하며― 이제는 한문 인장의 틀 안에서 맴돌며 뛰어난 한글을 한문에 예속시키는 당치않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립된 한글 인장서체에 대한 이론과 명칭을 한시바삐 정립시킬 때라고 본다

  본 인장서체는 훈민정음 원본체조무법(組繆法)으로 조형한 한글 인장서체로서, 한문의 상형미와는 다른―조형미가 일품인 글씨미며,〈인본체―印本體〉라 불러 마땅한 서체이다

6. 현대의 연합회 직인



내용 :

서체 :
사단법인전국/인판업연/
합회청량/리분회인
인본체(印本>體)
훈민정음 원본체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한글 인장서체

  〈감상포인트〉

  본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지극히 정돈된 통일성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본 인장은 18자의 글자를 가로 쓰기로 4열로 나누어 조각하였는데, 세로 4열의 가로획수를 보면 32획씩 4열이 모두 똑같음을 알수 있다

  이것은 앞 코너에서 소개한 옥새와 똑같은 구성방법으로서―획의 굵기도 여백의 넓이도 전체가 일점의 차이도 없이 일정한데서 오는 통일성과 지극히 정돈된 깨끗함이 본 인장의 특징이며 아름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인장은 아쉽게도 명작의 범주에 넣을수는 없다.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옥새와 똑같은 구성법을 썼는데 왜 본 인장은 명작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옥새와의 차이만 살펴본다면, 획이 가늘고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무게감이 부족한 점인데, 이것은 현대 인장의 시각에서 본다면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부각되기 때문에 결코 결점은 아니다

  본 작품의 격이 정상보다 한단계 떨어지는 이유는, 글자 한자 한자의 조형 형태의 미숙함에 있다

  옥새는 각 열의 가로획수를 통일시키기 위하여 구첩법으로 무작위로 구부린것 같지만 실은 수천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지극히 세련된 형태로 정착되었는데―본 작품은 한글 인장의 짧은 역사 때문에 아직 완벽한 조형 형태를 찾지 못하여 부자연스러운 글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인장을 감상 코너에 등록한 이유는 또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존무상의 옥새를 제작할때 가장 적합한 조형방법이었던 구첩법이, 묘하게도 현대 인장에서는 가장 빠르게 조각해야 하는 중하위급의 실용인장을 조각하는데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세상만사는 똑같은 일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7. 현대의 개인용 원형 인장


내용 :
서체 :
이준원인―李俊源印
인전체(印篆體)―전서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인장전서

  〈감상포인트〉

  현대의 인장은 개인용 사용 인장이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또 개인용 인장은 원만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각인(角印)을기피하고 원형 인장을 사용하는 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원형 인장이야말로 현대 인장의 예술성을 결정짓는 주역이라고 볼수도 있다

  실제로 원형 인장은 글자를 삽입한 후에 남는 공간이 사각 인장과는 전혀 다르다. 글씨 전체를 다 드러내면 남는 공간이 너무 많아지고, 여백을 적당히 남기려고 하면 글자의 한 모서리가 테두리에 걸려 잘리게 되므로 표현에 더욱 제약을 받게 된다

  또 사각 인장에서는 하단이나 좌우 어느 한쪽에 특별히 많은 공간을 남겨도 조화를 얻을수 있는데 비해, 원형 인장에서는 거의 상하좌우 대등한 공간을 남기지 않으면 균형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변화무쌍한 조형미를 구현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원형 인장이다

  본 인장은 이와같은 현대 인장의 여러가지 제약 속에서도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굴하는데 성공한―원형 인장의 표본으로 내놓을 만한 인장이다. 현대 인장서체의 큰 흐름인 한자 한자의 정형된 조형의 아름다움과 묘를 충분히 구현하였으며 미려한 느낌이 일품인 인장이다

8. 개인용 한글 인장 A


내용 :
서체 :
신성백인
인본체(印本體)
훈민정음 원본체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한글 인장서체

  〈감상포인트〉

  본 인장은 인각자의 독특한 개성이 풍부하게 들어난 작품이다. 직선인듯 곡선인듯 완만하게 휘어진 획도 보기좋고, 조형된 글자의 형태도 상당히 아름다운 인장이다. 역사가 짧은 한글 인장으로서 이만한 수준의 인장을 만나 보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만 획과 획 사이의 여백 처리에서 약간의 편중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인각자의 탓이라기 보다는 한글 인장서체의 연륜이 너무나 짧은데서 오는 과도기적인 결과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와같은 과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본 인장의 인각자와 같은 예술혼이 있어서 초석을 놓아주기 때문에 한글 인장서체의 맹점과 난맥이 발견되고 보완되면서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본 인장만 해도 이미 30여년전의 작품이라 한글 가로쓰기 회문―필순을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는 방법을 적용하였는데, 지금은 필순으로 인한 혼란을 없애기 위해 한글은 가로쓰기 지그재그 순서가 무언의 공약이 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

9. 개인용 한글 인장 B


내용 :
서체 :
권정현
인본체(印本體)
훈민정음 원본체를 조무법으로 조형한 한글 인장서체

  〈감상포인트〉

  본 인장의 서체는 위에 밝힌 것처럼 인본체인데,〈인본체는 이렇게 아름다운 글씨이다〉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인장이다

  절묘하고 변화있는 조형 형태도 일품이려니와 완벽한 균형과 조화가 갖추어져 어느 한 곳 흠잡을데가 없는 대단히 매력 있는 작품이다. 더욱이 전통적인 4자 형태의 구성방식을 탈피하고 3자 가로쓰기를 채택하여 현대감각을 살린 점도 높이 살만한 시도이다

  왜 요즘은 이와같이 훌륭한 한글 인장을 만나보기가 이토록 힘들어 졌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아무튼 본 인장과 같은 훌륭한 한글 인장서체를 보면 즐겁고―우수한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한글 인장서체의 찬란한 미래가 보이는 듯하여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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